데이터 사회의 도래와 자아 중심성의 쇠퇴

2013년, 구글이 새로운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를 출시했을 때, 글로벌 시장은 기대와 환희로 들끓었다. 수년 전 스마트폰이 인간-디바이스의 관계를 혁명적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트랜드를 이끌었듯, 인간의 몸과 한층 가까워진 보철물(안경)이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능력을 보다 용이하게 부여하리라 생각되었다. 2020년을 바라보는 현재, 그러한 꿈은 일단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앞서 소비자 중심의 디지털 혁명을 이끈 아이폰에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일관된 철학이 투영되어 있었다. 데이터 처리를 하는 컴퓨터를 과거 IBM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전문 기관의 권위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반인들의 손으로 친근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데이터 디바이스를 보다 민주적이면서도 다분히 자아 중심적(egocentric)으로 상상한 과거 대중문화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상의 크고 작은 컴퓨터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 작금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그런 자아 중심성은 더 이상 견지하기 어려운 태도가 되어버렸다. 데이터 처리 디바이스가 점점 인간의 몸과 가까워지는 경향은 많은 인터페이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메가 트랜드이다. 그럼에도 구글 글래스 개발 당시 기술 예측가들과 구글이 공히 간과했던 점은, 새로운 데이터-네트워크의 세계에서는 자아(ego)의 욕구 이상으로 상대방(alter)의 시선, 혹은 ’타자 중심성’이 중요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누구도,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기능적 의도로 자신을 정조준하는 구글 글래스의 카메라와 “OK. Google”을 외치는 사용자의 어색한 제스처를 반기지 않았다.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기꺼이 구글 글래스를 먼저 썼던 테키(techie)들마저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접하고 금새 안경을 벗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통상적으로 데이터를 새로운 산업 시대의 ‘석유’에 비유하곤 하지만, 데이터는 그보다 더 은밀한 사회성의 에로스를 담은 액체에 가깝다. 그 액체는 무수한 소음 속에서 속삭이고, 정보와 욕망의 흐름을 바꾼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이런 현대의 특성을 ‘액체근대’(liquid modernity)라고 일컫는다. 자아의 주체성은 가벼워지고, 미래로 치닫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갈수록 예측불가능하고 무정형(無定形)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액체 시대’에는 데이터의 활용 역시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곳곳에 스며들면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의 쓰나미와 구시대의 관성

최근의 기술 트랜드를 상징하는 이른바 ABCD(인공지능/블록체인/클라우드/데이터) 기술과 공유경제는 그 자체로 빅데이터의 유통과 구조화를 근간으로 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빅데이터가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되던 지난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빅데이터의 수집과 처리, 분석 능력은 다양한 방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이미 생산공정, 마케팅 등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이 활발하게 활용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신용카드의 결재 정보, 스마트폰과 스마트TV, 웨어러블 기기를 매개로 한 사용자의 행동 정보 등에 대한 접근성 역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외부 데이터 뿐만 아니라 각 조직의 내부 데이터와도 유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개별 데이터는 가볍고 무정형적이지만, 쓰임새가 정해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한다. 마치 바닷가의 물방울 하나하나는 미미하지만 한데 모여서 세찬 파도가 치듯이. 아마존, 우버 등 우리가 작금의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네트워크 경제 기업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우수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단, 그들이 과거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정보를 창발적으로 확장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데이터가 불러일으키는 쓰나미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도, 기존 산업을 파괴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권력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내의 이해관계자들은 이렇듯 권력과 정보의 매개가 되는 데이터가 미래 산업과 사회에 중요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데이터의 어떠한 특성이 중요한지를 절실히 체화하고 있지는 못하다. 산업계와 공공영역의 데이터 활용 실태를 들여다보면, 활용 방식은 여전히 정형화되어 있고, 실질적인 문제해결 보다는 고답적인 데이터 처리와 실적 전시에 치중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모습에서 새로운 문물을 제도와 의식의 개혁 없이 물질 그대로만 받아들이려 했던 구한말의 잔영마저 연상케 된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물론 그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빠른 인프라의 구축, 대기업과 벤처 캐피탈의 풍부한 자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재빨리 수용하는 국민들의 성향이 빅데이터 관련 기술의 빠른 도입에 일견 긍정적으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관련 지식을 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에는 데이터의 사용자이자 객체인 인간에 대한 숙고가 빠져 있다. 그런 면에서 성급히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관행이 데이터를 다루는 내적 역량의 심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데이터 트랜드의 변화와 사회의 과제

세간에 회자되는 빅데이터는 문제해결을 위한 정보의 미시적 단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해야 할 점은 사회와 조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종종 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변화에 발맞추어 데이터를 새로운 가설을 통해 수집하고, 구조화하고, 분석하고, 심도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의 역량이 기술의 활용, 인프라 구축에 선행해야 한다. 얼마 전 이세돌과의 바둑대결로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역시 오래 전 수립된 전산학자들의 한 가설을 지난 수십년간 비약적으로 증진된 컴퓨팅 파워를 통해 확인한 측면이 크다. 한때 유용했던 가설은 진화하고, 종종 새로운 가설에 의해 폐기되기도 한다. 현행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의 문제는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며, 도약을 위해선 새로운 사유와 가설이 필요하다. 사고의 유연성과 창발성을 위한 사회의 거버넌스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사적영역에서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다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적 환경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딥러닝’과 같은 새로운 기법에 환호하면서 그때그때 개별 기법들을 적용하기에 급급하지만, 정작 해당 알고리즘을 가능케 한 배경지식에 대한 이해나 비판적 토론이 교육계나 산업계, 기타 조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히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서비스의 소소한 개선을 돕는 데이터 테크닉은 신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발견과 해결을 위한 사유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종 목격되는 행태는 “왜?”와 “어떻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부재한, 데이터 분석 패키지 활용이나 ‘코딩’ 교육 몰입과 같은 강박적인 반복학습이다. 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데이터가 대부분의 경우 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선인터넷 속도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상적인 데이터 유통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기술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질적인 행태 면에서 극복해야 할 면이 적지 않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자면, 2000년대 초의 벤처 붐이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새로운 IT 기업을 키운 반면 데이터가 널리 회자되는 작금에 정작 데이터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룬 새로운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데이터 분석 인프라가 기존 대기업의 틀 안에서 내재화 되었을 뿐, 새로운 행위자들간의 다이내믹한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적인 생태계가 창출되는 모습 역시 목격하기 어렵다.

공공데이터 개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하지만, 정작 공공영역의 당사자에게 데이터 개방을 요청했을 때 용이하게 정보가 이전되고 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데이터 과학자가 미래에 각광받는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해당 부문 종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함양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기대되는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탈숙련화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혹자는 데이터를 도래하는 혁신 생태계의 혈류(血流)에 비유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데이터는 원활하게 흐르지도, 가치 창출의 신진대사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도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데이터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시장상황과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고유의 문제발견과 해결 의지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해외 데이터 기업들의 성공에 자극받은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이 최근 적지않은 규모의 투자를 받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해외에서 검증받은 서비스 모델이나 아이템을 들고 나온다. 시장은 물론 글로벌한 속성을 갖지만, 시장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오히려 로컬의 맥락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따라하기 전략은 다분히 몰맥락적이다. 이를테면 작금의 한국이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실리콘밸리는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 벤처캐피털의 축적된 경영 노하우, 고신뢰에 기반한 가치 투자와 아이디어의 창발, 데이터 처리에 선재하는 맥락의 이해와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상상력이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인맥이 엄연히 작동하는 로컬의 장이다. 이런 배경을 도외시한 실리콘밸리 모델의 흉내내기가 곧바로 대한민국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단순한 시장, 산업 전략에 앞서 해결해야 할 한국 로컬의 사회적 과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서, 무엇을 목표로 변화를 추동해야 할까?

사회혁신의 조건 

글의 서두에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었지만, 미국에서 그와 같은 혁신의 아이콘이 등장하는 것에 놀라지 않는 만큼이나, 대한민국에서 그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못하)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왜 그럴까? 특히 기술과 산업의 혁신을 담지하는 인물의 탄생은 단지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다분히 사회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명확한 혁신의 방향성과 운동성을 가질 때 비로소 혁신적인 인간도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비록 ABCD(인공지능/블록체인/클라우드/데이터) 기술과 공유경제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대두했지만, 현재 그 핵심적인 플랫폼들은 거의 모두 외국(미국)에 있다. 이미 독과점되고 있는 기술-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허브를 만들어내고 연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로컬의 행위자들이 다른 차원의 ‘매력’을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매력은 새로운 발상과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동시에 담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담론과 전략이 현재의 시급성에 매몰되기만 해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고유한 매력을 숙성시키기 어렵다.

결국 사회혁신을 위해서도 새로운 시민성과 인간의 미래, 변모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간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선제적으로 구안되어야 한다. 갈수록 다차원으로 축적되는 데이터가 이를 위해 인간과 사회의 어떤 면을 조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숙고와 합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데이터 상상력과 더불어 우리가 추동할 사회의 미래상이 한층 명확해져야 할 이유다.